- 저자
- 테드 창
- 출판
- 엘리
- 출판일
- 2019.05.20
숨은 무려 4번의 휴고상, 4번의 네뷸러상, 4번의 로커스상 등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한 테드 창의 소설로 바로 그 테드 창의 독보적 상상력과 예언적 통찰이 여러 개의 단편으로 담겨있는 소설 묶음집인데요.
다양한 SF 소재를 정말 기가 막히게 문학적으로 엮어 넣었습니다. 소위 말해 문과 이과의 아름다운 하모니 덕분에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죠.
그럼 단편 하나하나 소개해 드리고 제 감상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독특했는데요. 시간여행이란 다소 뻔한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슬람 신앙을 배경으로 삼아서 기존에 익숙한 이야기인 아라비안 나이트에 독특한 변주를 넣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단편의 주제를 보여주는 마지막 구절이 확 와닿았는데요.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순 없지만 회개와 속죄와 용서면 충분하다'는 그 구절이 정말 주제를 관통하는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책의 메인 격 단편인 <숨>은 솔직히 제가 이해하기엔 어려웠습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미시적 관점이 거시적이 되면서 종극에는 범 우주적 세계관으로 확장되니 따라잡기 힘들었습니다. 지금 말하면서도 과부화가 오네요. 아무튼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게 메인으로 왜 선정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볼 때 좀 더 집중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마지막 단편을 읽기 전까지 가장 좋은 단편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편에 속할 만큼의 분량인데도 순식간에 읽어나갔는데요. 어렸을 때 재밌게 가지고 놀던 다마고치가 증강현실을 탑재한 포켓몬고로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가상세계로까지 확장돼 디지언트들이란 반려생명체를 형성한 느낌이라 소재 자체가 참 그립고 친숙했습니다. 하지만 읽어 나갈수록 내용자체는 어두웠는데요. 지금의 부조리한 현실을 기가 막히게 투영하면서도 디지언트들의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미래가 읽고 난 후 마음을 무겁게 했죠.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낯선 주제였는데요. 빈번히 아동학대를 일삼는 인간 보모는 당연히 정답이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기계식 보모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짤막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죠. 해석이나 작가의 아이디어 노트를 봐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건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소수민족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아주 좋아하는 부류의 이야기였는데요. 거기다 교차되는 이야기 속 라이프로그와 리멤이라는 신선한 설정이 흥미를 끌었죠. 무엇보다 읽는 내내, 내 어릴 적 여러 가지 감정적 진실들을 다 시 한 번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건 전 진실이 주는 뜻밖의 진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죠. 하지만 단편 특성상 마무리가 너무 싱거웠습니다.
<거대한 침묵>은 끝까지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 너무 아쉬운 단편이었습니다.
<옴팔로스>는 그런 면에서 앞선 단편을 꾸짖는 것 같았는데요. 정말 이 단편의 내용이 언젠간 사실로 증명된다면 인류는 대개 참담한 심정을 느낄 것 같았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인데요. 역시 단편 모음집에서 압권은 가장 마지막에 실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나에게서 비롯된 모든 선택이 온전히 내가 한 선택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이에 대해 흔들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해도, 만약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면 나도 한 번쯤 평행자아를 만나보고 싶긴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내가 다른 생각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식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니까요. 아무튼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하나의 교훈으로 귀결되는 덕분에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테드창의 명성에 걸맞는 단편 모음집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SF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꼭 이 독특한 발상과 이야기들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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